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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이방죽과 사랑
작성자 관리자

사랑하다가 그리워하다가 땅 속에 묻혀간 젊은 영혼들이여, 산새가 울다 남긴 눈물일랑 받아 지금도 그 사랑 깁고 있는가?
『순이, 저 밤하늘의 별들이 왜 이리도 아름답지? 우리의 사랑도 저렇게 아름답고 빛나고 있음이 확실해…』
『꼭, 그래요. 우리의 사랑은 소중하고 영원하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이 든든한 가슴 속에 저를 영원히 쉬게 해 주세요. 네, 창식씨…』
『그래, 우리의 사랑은 의심이 있을 수 없어. 반드시 이뤄 놓고 말거야. 백번천번 명세한 우리의 사랑을 누구도 갈라놓을 순 없어. 나는 순이가 이 세상에 있는 한 모든 것이 행복으로 차있어.』 『매일 밤,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헤어져 혼자 집에 돌아가면, 저는 물을 떠놓고 창식씨의 건강과 행복을 빈 다음 저 별을 창문사이로 한없이 바라보며 아니 몸부림치며 사랑을 퍼부었어요. 그리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곤 했어요.』
『순이, 우리 작은 손가락을 걸어 이렇게 다시 맹세하는 거야…』
이렇게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은 뜨겁게 깊어만 갔다.
이들의 눈이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양가의 부모들은 집안망신이라하여 펄쩍펄쩍 뛰며 야단이 나버렸다.
부모의 애타는 심사인들 오죽했으리오. 전통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던 당시의 사회에선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우세스러워 못산다고 가슴 치고 한숨 쉬던 그들의 부모인들, 죽음으로 맹세한 애정 앞에 누군들 묘책이 있었겠는가?
결국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소하게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올려지고 말았다.

결혼 후 몇 달간 이들의 사랑은 끈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년이 넘어서자 창식의 마음은 변하고 있었다.
창식의 사랑은 너무 쉽게 식어갔다. 읍내에 사는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
이래서 결혼은 천국 같은 때도 있고 묘혈(墓穴)같은 때도 있다고 선인들은 말했을까?
자나깨나 순이의 가슴은 억누를 길이 없었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창식은 집을 나갔다.
몇 달이 되어도 돌아오질 않았다.
다른 여자와 놀아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순이는 정신을 가누기 어려웠다.
몸은 야위어가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는 순이의 마음은 변할 리가 없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안정을 취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대를 사랑하는 붉은 마음이 어떻게 변할 수가 있으랴'하고 마음을 더 굳건히 먹었다.
순이는 저녁을 먹은 후 어둠이 짙어오면 꼭 창식이와 자주 만났던 방죽(池) 주변을 서성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마다 나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깜깜 소식이었다.
하늘의 별빛은 여전히 빛나고 함께 놀았던 방죽(정읍시 고부면 신중리(新中里)에 있음)의 고요한 물결은 순이의 아픈 가슴을 더 깊은 곳으로 몰아 주었다.
기다림과 그리움과 사랑에 멍든 순이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맞이하기 위하여 몇 달을 산과 방죽옆을 서성거렸던 순이는 이제 버릇이요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세월은 흘렀다.
3년 뒤였다. 남편이 돌아 온 것이다.
남편인 창식은 읍내에 산다는 여자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다시 자기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아내를 쳐다볼 면목조차 없는 창식은 어두운 밤을 택해서 집에 들어가려는 심사였다.
집을 들어가기 전 집 주변을 살폈다.
삼 년 전이나 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무척 조용한 주위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울타리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소복(素服)을 한 아내가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내는 그 날밤도 남편을 기다리기 위하여 마중을 나가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어두운 밤이 아닌가?
남편은 아내가 가는 길을 따라 멀리서 뒤를 밟고 있었다.
아내는 산길을 가다가 가끔 발걸음을 늦추며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낮은 산길을 지나 들어서면 방죽, 아내는 방죽 옆에 이르자 흐느끼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앉아서 우는 것이었다. 한참 울던 아내는 논두렁길을 가더니만 어느 남자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외간남자의 품에 안긴 아내는 서로 한참 부둥켜 안고 있더니 정사(情事)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밤은 어둡고 부슬비가 쓸쓸히 내리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창식은 앞길이 캄캄하고 치가 떨렸다.
그렇지만 다음 장면을 보기 위해 떨리는 몸을 참고 있는데 정사를 끝낸 아내는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창식은 당장 쫓아가
『너, 이년, 더러운 계집!』 하자 아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주먹으로 수없이 아내를 때려 실신시킨 후 방죽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창식은 제 정신이 아닌 성 싶게 격분된 상태였다. 분을 이기지 못한 창식도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동이 트자 창식은 어제밤 일이 벌어졌던 주위를 돌아 보았다.
멀리 허수아비가 보였다. 남자 모양으로 만든 허수아비였다.
창식은 깜짝 놀랐다. 어제밤 정사한 곳이 거기임에 틀림없었다.
어제밤 아내는 허수아비를 붙들고 있었는데 남편인 창식은 외간 남자로 본 것이었다.
창식은 그때야 땅을 쳤다.
자기가 헛본 것이 틀림없었다.
얼른 달려가 아내의 시체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이미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은 안타까워 볼 수가 없었다.
순이의 시체는 방죽 가까이 있는, 옛날 사랑을 속삭이던 작은 언덕에 묻히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을에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었다.
그 방죽에서 매년 신중리나 주산(舟山)마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 방죽에서 목욕을 하다 죽거나 아니면 목욕하고 돌아온 후 이삼일이 지나면 죽거나 하는 것이었다.
또 자주 있었던 일은 밤에 방죽 옆을 지나면 하얀 옷을 입은 예쁜 색시가 나타나, 사람을 홀려 그 방죽을 큰길로 보이게 하고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홀린 사람은 방죽 속을 길인줄 알고 들어가다가 빠져 죽곤 했다.
그리고 묘에서는 가끔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식은 이 말을 전해 듣고 한번은 단단히 맘을 먹었다.
직접 자기가 그 영혼을 만나서 속죄라도 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달 밝은 밤을 택하여 창식은 방죽 가에 나가 있었다.
주위는 몹시 조용하고 쓸쓸했다.
하얀 달빛이 사람을 분간할 정도로 밝았다.
밤이 깊어 자정쯤 되었는데 듣던 바와 같이 하얀 옷을 차려 입은 색시가 자기 앞에 오고 있는데 바로 순이였다.
생전에 맑게 웃던 그 모습으로 바싹 다가오는 것이었다.
창식은 용기를 내었다.
『순이, 순이, 왜 이러는 거요? 당신을 배반한 것이 나였고, 당신을 죽인 사람이 바로 나였소. 나는 일생을 속죄하면서 살아갈 작정이요. 당신의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이 몸 다 바칠 계획이오니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지 말고 노여움을 풀어 주기 바라오.』 라고 말하자.
『아, 당신이 왔군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오기를 많이도 기다렸답니다. 이제 오셨으니 떠나지 마시고 같이 갑시다.』 하며 손을 끌어 홀리는데 창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고 말았다.
창식의 시체는 며칠이 지나서야 주민들에 의해 발견돼 그의 아내의 묘와 나란히 써 주었다.
두 사람이 죽은 후, 이 방죽에서 일어나는 이변은 감쪽같이 없어졌다.
이 이야기는 조선 때의 일이다.
창식은 고부면 신중리(新中里)에 살았던 총각이었고, 순이는 고부면 주산(舟山 : 데메 혹은 배메)에 살았던 처녀였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이 방죽은 지금도 '순이방죽'(일명 : 통울방죽)이라 불리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은 전설 속에 묻힌 하나의 공(空)이 되어 갔다.
'사랑하고 잃어버림은 사랑하지 아니했음보다 나으니라'던 테니슨의 시구(詩句)가 의문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다.
그들은 아마 고이 함께 쉴 수 있으리라.
죽음의 하얀 그림자가 어떤 아픔인지 아직 몰라도 그들은 영원하리라.
머언 지날 날의 사랑이란 기억 속에서…

 

자료제공:[ 정읍의 전설 ] 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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