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지금은 무릎 밑으로 묻힌 이 불상(佛像)은 몸에 비(比)하여 머리(頭部)가 큰 편이다.
라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육계(肉 . 상투)가 큼직하고, 이목구비(耳目口鼻)는 원만하지만 섬세한 표현은 아니다.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의 표시가 있고,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아 위축(萎縮)된 모습이다.
몸에 비(比)해 큰 편인 두 손은 각기 외장(外掌)하여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내리고 있는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는데,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애기손가락을 맞댄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착의법(着衣法)은 통견(通肩)으로 가슴에는 비스듬히 승각기(僧脚岐) 표현이 보이고, 배에도 군의(裙衣)의 띠가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몸(身體)의 비례가 어색하고 조각(彫刻) 수법(手法)이 이완(弛緩)된 모습이지만, 상호(相好. 사람의 용모와 형상)나 옷주름의 양식(樣式) 등은 그다지 도식적(圖式的)으로 흐르지 않는 것으로, 고려(高麗)시대의 불상(佛像) 양식(樣式)을 보여주고 있다.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남정동 북방에 4.5척의 반신상(半身像)이 있다” 하였다.
지금의 높이는 1.81m이고, 머리(頭部)가 큰 편이다.
어깨 넓이(肩廣)는 0.65m, 상체(上體)둘레 1.62m, 하체(下體)둘레 1.65m, 머리는 나발형 (螺髮形), 육계(肉 . 상투)가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새기고, 통견의(通肩衣)는 배 앞에서 띠를 나타냈다.
의습(衣褶)은 굵고 거칠다.
수인(手印)은 여원시무외인(與願施無畏印)인데, 세손가락(三指)은 뻗고, 제2지(指)와 제5 지(指)를 굽히고 있다.
무릎 아래로 땅 속에 묻혔었고, 바닥은 “시멘트”이다.
교통
역, 터미널에서 고부행 시내버스로 30분, 승용차로 20분
주변관광소
고부향교, 장문리 5층석탑, 군자정, 용흥리 석불입상, 고부관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