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조선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일부 신도들이 피난을 와 교우촌을 형성하여 일찌기 공소가 있었던 곳으로 1903년에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이 건물은 프랑스인 "미알롱" 신부가 부임하여 사제관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1936년 본당이 매각되어 없어지자 사제관인 이 건물을 고쳐서 공소로 활용함에 따라 내부와 외형이 변형되었으나 한식 목구조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개조되었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성당 건축으로서 종교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으며,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한옥의 형태를 잘 유지한 양호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