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균(羅容均) : 독립운동가, 정치가 1895. 2 ~ 1984. 7

정읍출신. 일본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유학하고 있던 중, 1918년 미국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 발표와 제1차세계대전 종결로 인한 식민지국가의 독립분위기에 따라 동경에서 백관수(白寬洙)·김도연(金度演) 등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 일대의 한국인 유학생을 동원하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독립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한 뒤 자금조달을 위하여 일시 귀국하여, 송진우(宋鎭禹)·김성수(金性洙)·최린(崔麟) 등을 방문하고 협조를 당부하였다.

동경으로 돌아와 준비를 계속한 끝에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조선유학생학우회 명목의 집회를 개최하고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는 데 참여하였다.
2·8 독립선언 후 주모자가 붙잡히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같은해 4월 상해로 망명하였다. 7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으며, 임시의정원 법제위원과 정무조사 특별위원 및 정치분과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11월에는 여운형(呂運亨)·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상해를 출발, 다음해 1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하였다.
1922년 5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전적 해체를 논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국민대표회주비회에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곳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제헌의원·보사부장관·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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