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천교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구국의 금융 전사 ‘김홍규’(1888-1950)
- 1888년 5월 2일 전라도 만경현(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의 지주 집안에서 출생.
-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율재(栗齋). 불교계의 석학인 탄허 스님의 아버지임.
- 1905년 독립에 뜻을 두고 천도교 입문 후, 1906년에는 증산교에 입고, 다시 1908년에 태을교에 입교, 1913년 보천교에 입교하여 재무주임이 되었으며, 1917년에 남북도 집리(재무책임자)에 선임됨.
- 1919년 당시 천도교 직영 인쇄소인 보성사1) 공장 감독으로 재직하며, 기미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의 인쇄 및 배포를 주도하여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음.
- 보천교 교주 차경석의 신임을 받아 교단 조직을 정비하고, 최고위 간부인 목방주2)에 올라 재무를 총괄함.
- 1920년 보천교도들과 함께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예치하는 등 거액의 군자금을 조달함.
- 1921년 독립자금 모금 활동 중 일제에 체포되어 마루 밑 항아리에 숨겨둔 지화와 은화를 압수당하고 다시 옥고를 치름. 출옥 후에도 한약을 제조해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헌납함.
- 일제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50년 9월 28일 한국전쟁 중 세상을 떠남.
- 2005년 건국포장3) 추서됨.
1) 보성사(普成社): 1910년대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인쇄소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찍어낸 장소
2) 목방주(木方主): 보천교의 최고 간부인 60방주 중 수·화·금·목(水火金木) 4대 핵심 직책 중 하나로, 사실상 교단의 2인자 역할을 의미
3) 대한민국의 건국과 국기(國基)를 공고히 하는 데 헌신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 다음가는 훈격의 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