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언(白光彦) : 의병, 1544(明宗9)~1592(宣祖25)

태인면 옹지면 방도동(泰仁縣 瓮地面 傍道洞, 現 井邑市 瓮東面 七石里)출생. 본관(本貫)은 수원(水原), 자(字)는 명희(明喜).

20세에 무과에 올라 일찍이 진해현감, 고성현령을 지냈다. 1589년(宣祖22) 북청판관을 지내고 1592년(宣祖 25) 모상을 당하여 벼슬을 사퇴하고 돌아왔다. 1592년(宣祖25) 임진난에 동향의 전덕린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 수백 명을 거느리고 전라관찰사 이광에게 달려가 그의 선봉장이 되어 서울로 진군했다. 이해 6월 5일 용인 싸움에서 전덕린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독자 함생도 1636년(仁祖14) 병자호란에 강화에서 전사했다. 전후 병조참판에 증하고 선무원종공신에 표했다. 그리고 인조 때 병조판서에 가증되었다. 뒤에 충민의 시호가 내리고 1666년(顯宗7) 유림들의 발의로, 향리 도동에 모충사를 세워 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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