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金開南) : 동학농민운동 대접주, 1853(哲宗4)~1894

태인(泰仁) 산외면 동곡리(山外面 東谷里) 지금곡(知琴谷, 지금실) 출생. 본관(本貫)은 도강(道康), 이름은 영주(永疇), 자(字)는 기선(箕先), 대현(大鉉)의 셋째아들

전봉준, 손화중과 아울러 갑오동학혁명 삼걸(三傑)의 한 사람으로 그 가운데서도 강경파인물로 알려져 있다. 1890년경 동학에 입도하여 1891년 접주가 되어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1892년 탐관오리의 제거와 교조신원을 위한 시위운동을 폈을 때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호남 지방의 동학지도자가 되었다.

1894년 초 전봉준이 선봉에 서서 고부봉기(古阜蜂起)을 일으키자, 손화중과 함께 동학군을 일으켜 4월에는 백산(白山)에 동학운동 본부인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설치하고 전봉준을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한 뒤 총관령(總管領) 직을 맡았으며, 전주화약(全州和約) 후 남원에 계속 주둔하면서 전라좌도를 관할, 폐정개혁을 추진하였으나 1894년 12월 1일 체포되어 전라 감사 이도재(李道宰)에 의해 전주로 압송된 1894년 12월 3일 전주초록바위에서 참수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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